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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by im_ 2023.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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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23년 목표인 365권의 책을 읽기 위해 읽은 책 중에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잡스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우주에 혁신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목표가 오늘의 스티브 잡스를 이루어 내었다고 합니다. 배울 점도 많고 느낀 점도 너무 많은 책이었지만 이번에는 2005년에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을 한 내용을 전달해 드리고자 합니다.

 

 

 

저도 전에 한번 대충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오늘 다시 보니 너무 마음을 울리는 내용이어서 특히나 이 글을 보시는 청소년이나 20대, 아니면 저같이 나이를 떠나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고 하는 모든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거 같아서 연설문을 옮겨 드립니다.

 

인생의 세 가지 전환점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스티브잡스

고맙습니다. 오늘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도 처음이네요. 오늘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딱 세 가지만 이야기하죠.

 

첫 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18개월 정도는 강의를 청강하며 학교 주변을 머무르다 정말로 그만뒀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 대답을 하려면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 친어머니는 대학원에 다니던 젊은 미혼모였고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나온 양부모에게 입양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어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호사 부부가 마지막 순간에 딸을 원한다고 마음을 바꾸었지요.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던 지금 제 양부모님이 한밤중에 전화를 받게 되었답니다. "예정에 없던 아들이 태어났어요. 그래도 입양하시겠어요? 라고 말이죠. 양부모님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양어머니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는 걸 친어머니가 알게 된 겁니다. 친어머니는 입양서류에 사인하는 걸 거부했어요. 몇 달 후에 제 양부모님이 저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마음이 누그러졌죠.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곳, 스탠퍼드만큼 학비가 비싼 대학을 골랐지요. 평범한 노동자였던 양부모님이 모은 재산은 제 학비로 다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교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지요.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대학교육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 부모님이 평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지요.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참 두렵고 힘든 순간이었지만, 그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 과목 대신 재미있어 보이는 과목을 들을 수 있었지요.

 

그런 생활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잘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네 집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 하는 콜라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건 정말 좋았습니다. 당시 호기심과 직관을 믿고 저지른 일든은 나중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당시 리드 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서체 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은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운 서체들로 장식되어 있었지요.  전 자퇴를 해서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그건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 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것에 푹 빠지고 말았죠.

 

사실 이것이 제 인생에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구상할 때 그때 경험들이 떠올랐죠. 우리는 맥 안에 이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지원하는 첫 번째 컴퓨터가 되었죠.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었다면, 맥은 여러 가지 다양한 폰트를 지원하지 못했을 겁니다.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테고, 어쩌면 개인용 컴퓨터가 그런 서체를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거고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가 아름다운 서체를 지원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분명히 보이더군요.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을 겁니다. 다만 현제와 과거의 사건들은 연관시켜 볼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현재의 순간들은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무엇이든 간에 말이죠. 이런 삶의 방식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서 남과 다른 것을 만들어냈지요.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스무 살 때 제 부모님의 차고에서 위즈와 함께 애플을 시작했죠.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그 덕에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사업은 10년 후 4,000명의 직원이 있는 200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가 스물아홉 살 때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냐고요?

 

당시 애플은 점점 성장해 나갔고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부터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애플의 비전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이사회는 그으 ㅣ편을 들었습니다. 저는 서른 살에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죠.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저는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렸고 아주 참담한 심정을 느껴야 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선배 벤처 기업인들에게 받았던 바통을 놓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저의 실패를 사과하려고 하기도 햇지요. 제 실패는 너무나 공개적인 것이었고 실리콘밸리에서 달아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했던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거든요.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도 제 그런 마음을 변화시키진 못했습니다. 비록 해고당했지만 제 일을 아직 사랑하고 있었죠.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애플에서 나오면서 성공에 대한 중압감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할 수 있었죠.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저는 넥스트와 픽사를 창립했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던 애플의 넥스트 인수로 저는 애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넥스트에서 우리가 개발했던 기술은 애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멋진 가족을 이루었죠.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ㅇ낳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이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요. 아마 제가 약이 필요했던 시기였나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을 벽돌로 내리치는 것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신념을 잃지 마세요. 제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사랑 앞에 진실하듯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여러분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누리려면 당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해야 하죠. 그리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겁니다. 만약 그런 일을 못 찾았다면 안주하지 말고 계속 찾아보세요. 그것을 찾아낸다면 스스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찾게 되면 다른 좋은 관계들이 그렇듯 여러분과 그 좋은 일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거예요. 그러니 안주하지 말고 계속 찾아다니세요.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겁니다. 열일곱 살 때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만약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이 글에 감명을 받은 저는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제게 말하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할 것인가'라고 말이죠. 그리고 '아니요'라는 대답이 여러 날 계속되면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제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남들의 기대나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죽음이라는 것 앞에선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벌거숭이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라면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1년 전쯤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 종양이 있었지요.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고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말하며 제게 남은 시간이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몇 달 안에 모두 해줘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정리해서 가족들이 좀 더 쉽게 제 임종을 맞아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죠. 작별 인사를 하란 말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이후엔 내시경을 위장을 지나 장까지 넣어서 조양에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어요. 그때 저는 마취 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체장암이었고 의사들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 간은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군요. 저는 이런 경험을 해 보았기에 지금 여러분들에게 죽음이 때로는 유용하다는 것을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는 싫을 겁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도달하게 돼 있는 종착지입니다.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어쩌면 죽음은 삶이 고안해 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일지 모릅니다. 죽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주지요. 지금 여러분들이 새로운 세대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낡은 세대가 되어서 새로운 세대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겁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도그마, 즉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분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고 직감은 여러분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 만한 '지구백과'라는 굉장한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멘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이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시적 영감을 불어 넣은 책이었죠. PC나 전자출판이 생기기 전에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걸로 만들어졌습니다. 35년 전의 종이로 된 구글 같은 것이었죠. 그 책은 좋은 도구와 정보, 개념들이 가득 시렬 있었습니다. 

 

스튜어트와 그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그 책의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때가 19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었을 때죠. 그 최종판의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만한 시골길이었어요. 그 밑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어요. "늘 배고프라, 늘 어리석으라."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였지요. 늘 배고프라, 늘 어리석으라. 제 자신에게 늘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늘 배고프라, 늘 어리석어라.

감사합니다.

 

길지 않은 연설문이지만 많은 내용들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작과 끝인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내가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는 것, 아직 찾지 못했다면 안주하지 말고 끝까지 찾아서 일을 하면서도 즐거운 그런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일이 나를 기쁘고 흥분되게 하나요? 내가 가치있고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한번 종이에 쭉 적어보세요. 스티브잡스가 스탠퍼트 졸업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사회로 나와서 일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게 되면, 내가 하는 일이 혁신이 되고, 트렌드가 되고, 우주를 바꿀 수 있다. 나의 가치 찾기,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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